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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학생 첫 마디, 어느 아파트 살아...그런대로 사네

경제

by 사용자 HIRITPOST 2019.06.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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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교육 불가능'

 

그 구조적인 절망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용주 서울 백석초등학교 교사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서울 성산동 '교육공동체 벗' 사무실에서 진행했던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못 사는 동네 애들과 분리시켜달라는 학부모들, '은밀한 폭력'이 진짜 무섭다"


기자 : 학교폭력이 공론화되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내놓은 덕분에, 학교폭력이 조금은 줄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용주 : 학생들끼리 휘두르는 가시적인 폭력은 줄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외에 교사와 학생 간, 또는 학생과 학생 사이의 보이지 않는 '은밀한 폭력'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은밀한 폭력'은 데이터에 안 잡힌다. 


폭력을 보다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존재한다. '은밀한 폭력'까이 아울러서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학생들에게 사회가 전달하는 가치가 문화화·제도화 되어 있는 것이 학교다. 교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정용주 교사. ⓒ프레시안(최형락)



이런 경우가 있다. 학군이 같아서 잘 사는 지역과 못 사는 지역 아이들이 동일한 초등학교 에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잘 사는 지역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진정을 넣었다. 

 

 

 

 

못 사는 지역의 아이들 때문에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면서 학군을 조정해달라는 게다. 결국 못 사는 지역의 아이들만 다니는 학군과 잘 사는 지역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군으로 쪼개져버렸다. 이건 폭력이 아닌가. 맞다. 학부모와 교사의 폭력이다. 학교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학교 안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누가 더 학교의 여론을 더 형성하기 쉽겠는지. 더 많이 배운 사람들, 잘 사는 엄마들과 그러한 엄마를 둔 아이들이 의견을 형성해 나간다. 당연히 소외되는 사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순수하지 않다" 



기자 : 학교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했을 경우에도 폭력적인 상황이 생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어른들의 경우 말고, 아이들끼리 자율적으로 하는 의사결정이라면 어떨까. 그런 케이스에서도 폭력적인 상황이 생길까. 

정용주 : 그렇다. 아이들 역시나 순수하지 않다. 아이들도 폭력성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실제로 폭력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 스스로 체득한 부분일 수도 있고, 부모나 사회에서 배운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마냥 순수하다면 평화적 감수성을 기르는 게 별로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므로, 폭력적 문화에 노출된 것보다 몇 배가 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아이들의 평화적 감수성을 개발할 수 있다. 

학교폭력은 다층적으로 봐야 한다. 굉장히 구조화되고 심화된 학교폭력의 영역이 있고,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한번 싸우고 마는 지속성이 없는 폭력이 있고, 학교끼리 묶인 일종의 카르텔 형식으로 조폭처럼 움직이는 폭력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머리를 쓰면서 잔혹한 방법으로 학생들끼리 왕따를 시키는 경우가 늘었다.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중 한 명은 이것을 '단속사회'라는 말로 표현했다. 특히 거주지별로 계층이 분화되면서 못사는 지역과 잘사는 지역 아이들의 구분이 선명하며, 못사는 지역 내에서도 일종의 순혈주의가 작용한다는 말이다. 

 

어떤 평수, 무슨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기준에 의해 자기들끼리 철저하게 배척한다. 이러한 폭력이 훨씬 더 심각하다. 그러나 이런 폭력은 눈에 잘 띄지 않고 크게 이슈가 되지도 않는다. 

'학교가 폭력의 숙주다'라는 명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실 학교만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곳도 드물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 사회 역시 뭔가 좀 특이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배격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폭력이 싹튼다. 

 

 


"너 어느 아파트 살아?", "평수는 그런대로 좀 사네" 


이런 사례도 있다. 목동에 한 중학교가 있는데 외국어고등학교를 1년에 60명씩 가는 학교다. 서울 외곽에 있는 아이들도 외고를 가기 위해 종종 목동으로 진입하곤 한다. 그런데 한 아이가 심각하게 다시 전학을 고민하길래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목동으로 전학 갔더니 아이들이 '너 어느 아파트 살아?'라고 물었다고 했다. 목동 아파트도 길 건너로 구분되는데, '길 건너 살아'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더 이상 말을 안 걸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 ○○아파트'라고 말했더니, '그런 아파트도 있어?'라며 '평수는 몇 평이야?'라고 했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40평이야'라고 답했더니, '아, 평수는 그런대로 좀 사네'라고 했다고 한다. 또 과외를 같이 받는 아이들끼리 서로 뭉쳐 다니는 문화도 있다. 

 

비슷한 경제력과 문화를 가진 이들끼리의 동질성은 계속 강화되며, 외부를 향해서는 엄청나게 배타적이 된다. 결국 그 아이는 중학교 3년을 오기로 버텼다고 했다. 그 아이가 경험한 폭력이 과연 '힐링'이나 '코칭'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6학년만 되어도 가난하면 학생회장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초등학교 6학년만 되어도 '전교 학생회장은 엄마가 학교에 오면서 열심히 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집은 못사니까 나는 회장을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통한다고 한다. 공동체에서의 정치적 참여에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폭력과 불평등, 불합리에 대해 관조자가 되버린다. '나는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아이들을 냉소적으로 만든다. 문제를 해결하고 잘못된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오히려 냉소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학교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무의미한 존재로 규정하게 된다. 학교는 그냥 의미 없이 왔다 갔다만 하는 장소가 된다. 

학교는 이런 식으로 '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아무 것도 될 수 없어'라고 가르쳐 놓고서는, '넌 커서 뭐가 되려고 하느냐'며 핀잔을 준다. 이런 학교에서 무슨 소통이 가능하겠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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